영하 15도 기온에 귀가 얼 것만 같다고 생각하며 걷다보니 저절로 따뜻한 빛을 풍기는 빵집으로 발길이 향했다. 진열대에 놓인 여러 종류의 빵 중에서 애플파이를 보니 남편이 생각났다. 애플파이를 좋아하는 남편. 우리가 파리 여행 갔을 때 그는 베이커리를 볼 때 마다 애플파이를 찾았다.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던 나도 여행 내내 남편을 따라 애플파이를 먹고, 장단점을 함께 분석하다 보니 이제는 나 또한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가끔 이렇게 내 생활 속의 사소한 선택과 삶의 방향에서 그의 존재를 느낄 때 절로 마음 한켠이 시큰해진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넷플릭스로 주말에 보다가 중간에 끊었던 영화를 봤다. 언페이스풀이란 영화인데, 이미 남편은 한 번 봤던 작품이었다. 잠들기 전 대화를 나누면서 남편이 “결말이 어떻게 될꺼 같아?” 라고 물었다. 간단한 줄거리는 결혼 10여년 차 된 부부인데, 아내가 처음 만난 이국적이고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 이야기이다. 남편의 질문에 나는
“결말은 뻔하지 않을까? 남편이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고 둘이 갈등을 겪다가 아내가 젊은 남자랑 헤어지고 다시 남편과의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오는거?”라 답했다. 그러자 남편은 “승혜는 이 영화 꼭 끝까지 봐야겠다”라고 말을 했다.
퇴근 길에 그 말이 생각나고, 그 의미가 궁금해서 영화를 마저 봤다. 전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전개와 결말이었다. 영화 속에서 부부가 서로의 실수를 알게된 후에 다시 감싸안으며 함께 견뎌보기 위해 눈물을 흘리는 감정이 부부가 된 지금 더 무겁게 다가왔다. 부부라는 관계가 어떤거길래 남이 되기 너무 쉬우면서도 그리 쉽게 남이 되어버리지 못하는 걸까. 오히려 그 어떤 관계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은 둘 만이 공유하는 정서적인 교감, 서로의 이상과 삶의 방향을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 할 수 있는 포옹력을 갖기 때문이 아닐까.
결혼을 하고 나니 연애 때 같은 자존심 싸움이 점점 없어진다는걸 느낀다. 결국 그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고, 나의 편안함이 그의 편안함이다. 이제 겨우 결혼 후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앞으로 남은 날을 어떻게 사랑을 유지하고 갈등을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시간이 흐르고 관계가 더욱 깊어져 세상 떠나는 날 함께 해줘 고맙다고, 다른 세상에서 또 만나자는 약속을 나누고 싶다.
'일상의 일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 (0) | 2018.02.08 |
---|---|
언젠가 쓴 자기소개 글 (0) | 2018.02.06 |
품격을 지키며 사는 방법 (0) | 2018.02.06 |
따로 또 같이 (0) | 2018.01.23 |
우리의 브랜드 (0) | 2018.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