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의 상태와 행복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내 삶에 주변인이 주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느꼈을 때 부터다. 가까운 이들의 마음이 편안해야 내 생활도 안정적이고, 내 동료의 일이 잘되야 나와도 시너지가 난다. 내 생각했던 것 보다 부정적인 감정이 주는 힘은 강력했다. 작은 오해나 마음 속 부정적인 씨앗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만드는 경우들을 보며 나 또한 매순간 행동과 말이 조심스러울 때가 많아졌다. 더더욱 조심스러운 것은 대부분의 부정적인 상황은 관계적 결함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괜찮다. 조심하고 배려면 된다. 일상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살피는 것은 보통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울증이 온 저자는 한단계 더 나아간 치유가 필요했다.
‘나는 알게 모르게 무지나 탐욕, 두려움, 분노 때문에 나에게 상처 입힌 당신을 용서한다.
당신이 평화로워지기를. 당신이 행복해지기를.’
내게 상처를 입힌 이의 이름만 떠올려도 급브레이크를 밟은 듯 덜컹거리는 마음이 드는데, 그 토할 것 같은 울렁임을 직면하고 그를 용서할 뿐 아니라 행복까지 빌어주다니.. 이것은 결단이고 용기였으며, 단지 편안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위한 배려의 태도를 뛰어넘는 치유의 마음가짐이었다. 저자의 치유 과정을 덤덤히 따라가다가 모든 진료를 마친 마지막 챕터를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한 정신과 의사는 인터뷰에서 상담을 오는 사람들은 상처를 준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로 인해 상처받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했다. 이 책의 부제가 우울증 극복기가 아니라 ‘아픔을 마주하고 헤쳐가는 태도에 관하여’인 이유도 이 때문인 것 같다. 고통을 받는 것은 대부분 선의를 갖고 조심스레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언젠가 또다시 마음 다치는 일을 겪고,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 그때마다 상처준 이를 용서하고 행복을 빌어주겠지. 그렇게 더 단단하고 강한 사람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우울증 치료로 얻는 가장 값진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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