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꿈을 닮았다. 포근하고 편안하여 위로가 되는 달빛. 그래서 예술은 달을 찾는다. 음악, 미술, 문학… 가릴 것 없이 달과 관련한 유명한 작품 하나쯤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예술이 아닌 평범한 일상으로 넘어오더라도 우리는 생활 속에서 달을 찾는다. 달을 구경하기 위해 밤길을 거닐고, 달의 변화와 모양을 기념하기도 한다.
소설 <달의 바다>는 우주 비행사인 고모의 편지로 시작한다. 서울에 있는 가족들에게 미국에 있는 고모가 편지를 보내온다. 고모의 삶을 채운 단어는 환상, 우주, 아름다움, 자유이다. 어쩌면 그녀는 공상 속을 사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고모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어요? 그건 사실 끔찍하리만치 실망스러운 일이에요…’
멀리서 보면 황금같이 빛나던 달이 사실 다가서보면 싯누런 과자 부스러기였는지, 간절히 바라던 꿈에 가까이 가보니 막상 그 곳은 빛도, 환상도 없는 황량한 땅이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왜인지 고모의 편지를 읽다 보면 그녀는 여전히 환상 속을 사는 것만 같고, 우주와 꿈을 이야기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자유를 노래한다. 작가는 그렇게 미국에서 보내온 고모의 편지와 서울에서 백수로 지내고 있는 기자 지망생 은이의 이야기를 교차 서술한다.
나는 이 소설을 두 번 읽었다. 대학 수업에서 문학작품 토론을 위해 지정 된 책이라 처음 읽었으며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은 직장인으로 구성된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있으면서 직접 토론 책으로 제안을 하여 한 번 더 읽게 되었다. 직장인 독서 모임에 이 책을 추천한 것은 기분 전환을 위해서였다. 출근길, 적금, 월요병, 월급일, 승진, 결혼 자금… 이런 단어에서 벗어나 우주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심장을 간질이는 뭉클함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 때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공상의 세계 속에서 우주를 떠다니며 유쾌한 삶을 사는 고모가 눈에 보였다. 그리고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살며 계속해서 기자 시험에 떨어져 좌절하는 은이가 애처로웠다. 4년이 지나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하며 성실함을 강점으로 삼고 매일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에 충실한 소설 속 인물 한 명, 한 명이 마음에 다가온다. 우주나 달에 대해 이야기하는 고모의 편지가 아닌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내 마음을 간질인다.
우주에 가는 것은 중력을 이겨내야 하고 몸을 짓누르는 우주복을 입고 버텨야 하는 것이지만,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로 향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음은 자신이 선택했기 때문이란다. 우주가 정답이기 때문이 아닌 우주를 선택했음에 계속해서 우주로 떠난다. ‘확신’이 아닌 ‘선택’. 확신, 그 다음에 선택을 하는 회로를 가지고 있는 나는 이 대목에서 꼭 감겨 있던 눈을 뜬 기분이었다. 나는 살면서 얼마나 많이 ‘확신’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는지 되돌아본다. 확신을 논하기보다 내 선택에 믿음을 갖고, 충실하다면 인생은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너무 많은 생각과 계산을 하느라 내가 놓치고 있던 즐거움이 이제야 떠오른다.
매일 일하고 휴식하면서 무언가를 위해서 열심히 살지만, 그것이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그려지지 않아 가끔 왜 이렇게 바쁘게 사는 것일까 하며 멍해질 때 이 책이 생각날 것 같다. 누구에게나 결점이 있고, 누구나 잘못된 선택을 하고 실수를 반복한다. 그렇지만 과연 그것이 중요한 문제일까. 사는 것은 우리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며, 선택에 대응하는 모습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것, 그래서 세상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리는 과정인 것 같다. 끊임없이 나를 찾고, 믿고, 나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소설 <달의 바다>는 한 번도 내게 ‘힘 내’ 라고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 책을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아무런 말을 건네지 않더라도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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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오래전에 쓴 서평.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찾아보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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